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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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4 15:08
우리나라 사법시험 61년 역사에서 최초로 시각장애인이 2차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주인공은 제50회 사법시험 합격자 1005명에 포함되었던 최영(28)씨입지다.
오는 11월 3차 면접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법조인이 됩니다.
최씨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시각장애 3급입니다. 이 병은 흑백·명암을 구별하는 망막 시신경세포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질병으로서 현재 뚜렷한 치료법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단순히 '눈이 많이 나쁘구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눈앞의 사물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꾸 부딪히고 넘어지자 고3 수능시험이 끝난 후 대학병원에서 '망막색소변성증'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의 눈은 현재 바로 눈앞에 있는 사물만 겨우 분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그는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재수를 하며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여 2002년 본격적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앞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공부의 진도가 너무 느려 1차 시험만 4번 연속 떨어져 2005년 사시 공부를 접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 방황하던 중 그는 한 선배로부터 "일본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사법시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2006년 1월 법무부에 "시각장애인이 음성 지원 컴퓨터로 시험을 칠 수 있게 해달라"고 진정했고 법무부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사시고부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그를 돕겠다는 재단이 있었지만 도우미들을 통해 자신이 학습해야 하는 법학 교재 한 권을 음성 낭독 기능이 있는 컴퓨터에 일일이 쳐 넣는 데에만 길게는 서너 달씩 걸렸습니다. 원하는 책을 그때그때 볼 수 없는 것도 답답했지만 음성 교재를 듣는 식으로는 남들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서너 배 이상 더 걸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최씨는 2007년 1차 시험에 합격했고 이번에 2차 시험에 합격한 것입니다. 그는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혼자 살아가는 그에게 큰 도움이 된 건 학교 친구들이라며 고마워했습니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갈 때도, 음성 법전 교재를 받아 올 때도, 난해한 법률 용어를 풀이할 때도 주변 친구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안 되겠구나' 싶은 순간마다 포기하지 말라며 손을 잡아준 친구들이 있었죠. 친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혼자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갈 '걸음마' 연습을 하겠다"고 말하면서 "장애인 정책에 변화를 줄 수 있도록 변호사로 일하고 싶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배려해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 보탬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시각장애인 법조인이 탄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가 역경 가운데서 영광스러운 사법고시 합격은 단순한 한 개인의 출세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장애인도 당당하게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에 더욱 귀중한 일입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며 포기하는 순간마다 그의 손을 잡아준 친구들의 따뜻한 우정이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했다 봅니다. 남을 돕기 위해 뻗치는 손들에 의해 우리 사회에 기적들이 탄생하는가 봅니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